
'학습(學習)'. 우리가 입에 달고 사는 말이다. 그런데 이 말이 두 글자로 되어 있다는 걸 곱씹어 본 적 있는가. 배울 학(學), 익힐 습(習). 배우는 것과 익히는 것은 다른 일이다. 우리는 대개 앞 글자에만 부지런하고 뒷 글자는 건너뛴다.
習이라는 글자에는 깃(羽)이 들어 있다. 어린 새가 수없이 날갯짓을 되풀이하며 나는 법을 몸에 새기는 모습에서 '익히다'라는 뜻이 나왔다고 한다. 나는 법을 읽어서 아는 새는 없다. 떨어지고, 퍼덕이고, 또 떨어진다. 화려한 구석이라곤 없는, 같은 동작의 지겨운 되풀이다.
배우는 일은 짜릿하다. 새 책을 펴고, 새 강의를 듣고, 몰랐던 걸 알게 되는 순간엔 머리가 환해진다. 반면 익히는 일은 지겹다. 이미 아는 걸, 될 때까지, 몸이 기억할 때까지 되풀이하는 일이다. 새로울 게 없다. 그래서 우리는 배우는 데는 열심이면서 익히는 데는 번번이 손을 놓는다.
불교에 돈오점수(頓悟漸修)라는 말이 있다. 깨달음은 돈오처럼 번쩍 오지만, 그것을 몸에 새기는 일은 점수처럼 지겹게 닦아 나가야 한다. 그런데 우리는 번쩍이는 돈오만 반기고 지루한 점수는 건너뛴다.
문제는 여기서 생긴다. 배우기만 하고 익히지 않으면 아무것도 남지 않는다. 강의를 다 듣고 나면 마치 내가 그 강사가 된 것 같다. 하지만 강의실을 나서는 순간 손에 남는 건 없다. 날갯짓 없이 깃털만 그득한 새는 여전히 날지 못한다.
그런데도 우리는 자꾸 새것을 찾는다. 이 강의가 끝나면 다음 강의를, 이 책을 덮으면 다음 책을. 뭔가 계속 배우고 있으니 성장하는 것 같다. 하지만 가만히 보면 그 부지런한 배움이 실은 익힘의 지루함을 피하는 도피일 때가 많다. 새로 배우는 짜릿함은 쉽고 이미 배운 걸 되풀이하는 지겨움은 어려우니까. '나 이만큼 배웠어'라는 뿌듯함은 달지만 그 뿌듯함은 나를 바꾸지 못한다.
나도 그랬다. 처음 강연을 나갔을 땐 대본을 통째로 외웠다. 그런데 막상 무대에 서니 머릿속이 하얘졌다. 외운 문장은 입에서 겉돌고 눈은 청중을 보지 못했다. 새로운 강연 기법을 검색해 봐도 소용없었다. 결국 나를 바꾼 건 새 기법이 아니라 같은 이야기를 수십 번 되풀이하며 무대에 선 시간이었다. 어느 순간 대본 없이도 말이 흘러나왔다. 그 지겨운 반복이 그제야 내 것이 됐다.
익힘은 원래 지루하다. 어린 새의 날갯짓처럼 눈에 띄지도, 티가 나지도 않는다. 하지만 사람을 바꾸는 건 새로 배우는 짜릿한 순간이 아니라 이미 배운 걸 될 때까지 되풀이하는 그 재미없는 구간이다. 남들이 다 건너뛰는 바로 그 구간에 성장이 숨어 있다.
그러니 새로 배울 것을 찾기 전에 한 번 물어볼 일이다.
나는 지금 익히는 지루함을 피해 또 새것을 기웃거리고 있는 건 아닌가.
배웠으면 익혀야 한다. 그제야 깃털은 날 수 있는 날개가 된다.
당신은 지금 배우고 있는가, 익히고 있는가.
[박근필]
그로쓰 퍼실리테이터
읽고 쓰고 말하는 삶으로 당신의 성장을 돕습니다
박근필성장연구소장, 수의사,
칼럼니스트, 커리어 스토리텔러
저서; <마흔 더 늦기 전에 생각의 틀을 리셋하라>
독저팅, 필북, 필레터, 필라이프 코칭 운영
부산 시청 특강 외 다수 출강
이메일 : tothemoon_park@naver.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