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아뜰리에윤 화실] 이윤선 대표 |
"감정을 표현하는 힘은 삶을 다시 감각하게 합니다."
정부세종컨벤션센터에 약 300명이 모였던 날이 있었습니다. 세종시교육청 공무원 인사정책 설명회가 열린 자리였죠. 이와 함께 문화예술 체험 프로그램도 함께 구성됐는데요. 참가자들은 베어브릭 채색과 백드롭 페인팅 중 하나를 선택해 체험할 수 있었습니다. 테이블마다 물감과 붓이 놓였고, 공간에는 잔잔한 재즈 음악이 흘렀습니다.
![]() ▲ [아뜰리에윤 화실] 설명회 속 체험 프로그램 현장 |
처음 자리에 앉은 분들의 반응은 거의 비슷했습니다.
오래 잊고 있던 동작 앞에서 몸이 먼저 낯설어하듯 붓을 들기 전 잠시 주저하는 순간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첫 붓질이 시작되자 분위기는 달라졌습니다. 컬러를 고르고, 옆 사람의 작품을 바라보고, 작게 웃으며 자연스럽게 대화가 이어졌습니다. 설명회가 막 끝난 공간이라는 것이 느껴지지 않을 만큼 말이죠.
저는 그 장면을 보며 한 가지를 생각했습니다.
이분들이 마지막으로 무언가를 그려본 게 언제였을까.
우리는 성장 과정에서 언어를 배우고, 수학을 배우고, 사회 속에서 필요한 규칙과 태도를 익힙니다. 그러나 정작 자신의 감정을 어떻게 바라보고 표현해야 하는지는 충분히 배우지 못한 채 어른이 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 결과 기쁨과 슬픔, 불안과 기대, 지친 마음은 분명 존재하지만 그것을 드러내는 일에는 서툰 사람이 됩니다.
성인에게 예술은 기술을 배우는 훈련만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성인 예술교육에서 더 본질적인 질문은 '무엇을 그릴 것인가'보다 '왜 그리고 싶은가'에 가깝습니다. 하나의 색을 고르는 일, 선을 긋는 일, 화면 안에 어떤 형태를 남기는 일은 자신의 내면을 조심스럽게 꺼내 바라보는 것과 같습니다. 그 과정에서 스스로도 미처 알지 못했던 감정의 결을 발견하기도 합니다.
![]() ▲ [아뜰리에윤 화실] 화실 내부 모습 |
많은 분들이 처음에는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저는 그림을 못 그려요."
그러나 예술교육의 출발점은 잘함과 못함을 구분하는 데 있지 않습니다. 잘 그려야 한다는 부담에서 벗어나는 순간, 비로소 자신의 감각으로 화면을 채울 수 있습니다. 예술은 평가받기 위한 결과물이기 이전에, 자신과 대화하는 하나의 방식이 될 수 있습니다.
특히 예술의 시간은 일상의 속도를 잠시 늦추어 줍니다. 우리는 대부분 빠르게 판단하고, 효율적으로 움직이며, 정답을 찾는 방식에 익숙합니다. 하지만 붓을 들고 색을 섞는 시간 속에서 사람은 자신의 호흡을 되찾습니다. 이것은 단순한 휴식과는 다릅니다. 무언가를 직접 만들며 감각을 회복하는 ‘능동적인 쉼’에 더 가깝습니다.
그날 300명이 함께한 자리에서 확인한 것도 결국 그것이었습니다.
역할로 불리던 사람들이 붓을 잡는 순간, 잠시 다른 방식으로 자신을 만났습니다. 저는 그것이 단순한 이벤트가 아니라 '표현의 경험'이었다고 생각합니다.
![]() ▲ [아뜰리에윤 화실] 수업 모습 |
지금 우리 사회에는 성인을 위한 예술의 시간이 더 많이 필요합니다. 잘하지 않아도 괜찮은 시간, 자기 안의 감정을 조용히 들여다볼 수 있는 시간이요. 예술은 특별한 재능을 가진 사람만의 전유물이 아닙니다. 누구나 자신의 삶을 표현할 권리가 있고, 그 표현을 통해 조금 더 선명하게 자신을 이해할 수 있습니다.
어른이 된다는 것은 감정을 잃어버리는 일이 아니라, 자신의 감정을 더 깊이 이해하는 과정이어야 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성인 예술교육은 늦게 시작하는 취미가 아니라 삶을 다시 감각하는 교육입니다.
붓을 드는 순간 우리는 단순히 그림을 그리는 사람이 아니라, 자신의 삶을 새로운 언어로 바라보는 사람이 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