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는 아버지보다 내가 더 높은 곳에 서 있다고 느꼈다. 잠시나마 아버지의 무지를 가엾게 여길 만큼, 젖은 장화를 꾸짖는 그 말씀은 너무도 하찮게 들렸다.
‘아버지가 이 모든 것을 아신다면…….’
나는 생각했다. 나는 마치 살인을 저질러 놓고는 빵 하나를 훔친 죄 때문에 심문받는 사람처럼 느껴졌다. 그 감정은 추하고도 불쾌했다. 그러나 이상하게도 강렬했고, 깊은 매혹을 지니고 있었다. 그리고 그 감정은 나를 나의 비밀과 죄의식에 더욱 굳게 묶어 놓았다.
중학교 2학년 어느 여름밤이었다. 동네 친구들과 모래밭에 둘러앉아 냇가에서 잡아 온 물고기로 매운탕을 끓여놓고 막걸리를 마시며 즐겁게 놀고 있었다. 누가 저 멀리 어둠 속에서 다가오고 있었다. 나의 아버지였다! 나는 아버지에게 다가가 소리쳤다.
“왜 여기 오셨어요? 우리끼리 놀고 있는데….”
아버지는 우물쭈물 말씀하셨다.
“걱정돼서 안 왔나?”
“뭐가 걱정돼요? 집에 가셔요!”
나는 아버지를 집으로 돌려보냈다. 참, 나쁜 아들이었다. 자식을 걱정하는 아버지에게 그리도 몰인정하게 대하다니! 나는 아버지를 경멸하고 있었다.
‘글자도 모르시는 아버지!’ 그보다도 아버지는 술에 취하시면 밥상을 뒤엎으셨다. 내가 중학생이 되면서 나는 그런 아버지에게 대들었다. 아버지는 순순히 나의 반항을 받아들이셨다.
나는 아버지에 대한 예의가 점점 없어졌다. 그게 차츰 습관이 되었다. 아버지는 아들이 넘어야 하는 큰 산일 것이다. 그런데 나는 너무나 쉽게 그 산을 넘어버렸다.
그래서 그럴 것이다. 지금도 나는 ‘나보다 센 권위’를 견디지 못한다. 아마 내가 조직에 속하지 못하고, 혼자 늑대처럼 다니는 것도 이런 성장 과정의 결과일 것이다. 나는 ‘나를 나의 비밀과 죄의식에 더욱 굳게 묶어 놓은 감정’을 항상 들여다보고 성찰해야 할 것이다.
가장 좋은 부자(父子) 관계는 ‘친구 관계’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나는 요즘 나의 아들들과 친구가 되려 무지 노력하고 있다.
인간 사회는 지켜야 할 율법이 있는데,
아버지는 지키려 하고 아들은 어기려 할 것이다.
이 팽팽한 긴장 속에서 ‘살아 있는 율법’이 만들어질 것이다.
[고석근]
수필가
인문학 강사
한국산문 신인상
제6회 민들레문학상 수상.
이메일: ksk21ccc-@daum.net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