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늘날 공동체를 다시 사유한다는 것은 결국 한 가지 질문으로 수렴된다. 우리는 어떻게 함께 살 것인가, 그리고 그 ‘함께’는 개별적 삶을 어떻게 변화시키는가.
근대 이후 개인은 공동체로부터 해방된 존재로 이해되어 왔다. 개인의 자유와 권리는 공동체의 억압으로부터 벗어나는 과정속에서 확립되었고, 이는 민주주의의 중요한 성과이기도 하다. 그러나 이와 동시에 개인은 점점 더 고립된 존재가 되었다. 선택의 자유는 확대되었지만 삶의 의미를 함께 구성하는 관계는 약화되었다. 그 결과 개인은 공동체를 억압으로 경험하기도 하고, 동시에 결핍으로 경험하기도 하는 이중적 상황에 놓여 있다.
이러한 조건 속에서 공동체를 복원하자는 요구는 시대적 의제처럼 등장하지만, 공동체의 회복이 곧 좋은 사회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공동체의 순기능 못지않게 폐해도 적지 않기 때문이다. 특히 혈연과 지연, 학연과 정치적 진영처럼 강한 소속감을 중심으로 형성된 공동체가 다수인 우리 사회에서는 이러한 폐해가 직접적이다. 따라서 중요한 것은 공동체의 유무가 아니라 어떤 방식의 결속인가, 무엇을 중심으로 형성되고 책임지는 공동체인가를 숙고해볼 필요가 있다.
이순신의 사례는 바로 이 지점에서 흥미로운 질문을 던진다. 임진왜란 당시, 그가 이끌었던 조직은 오늘날 우리가 생각하는 수평적 공동체와는 전혀 달랐다. 전란 중의 군사조직이었고, 명령과 복종이 생사를 결정하는 강한 위계 조직일 수밖에 없다. 그런 조직에서 이순신은 어떻게 공동체 의식을 형성할 수 있었을까.
『난중일기』를 읽다 보면 이순신은 부하들에게 엄격하게 책임을 묻지만, 자신 역시 그 책임의 바깥에 서있지 않는다. 전투 결과와 병사들의 생사 여부, 백성들의 안전까지 전쟁터의 지휘관인 자신의 책임 안으로 모두 끌어들인다. 이 점에서 그의 공동체 의식은 단순히 ‘하나가 되는 것’과는 거리가 있었다.
그것은 동일성을 강요하거나 감정을 동원해 결속을 만들어내는 방식이 아니라 각자의 위치에서 감당해야 할 책임을 분명히 하는 데서 출발한다. 다시 말해, 이순신이 구축한 공동체는 감정의 일치가 아니라 책임의 공유 위에 놓여 있었다.
이러한 점에서 그의 공동체는 위계적 구조 속에서도 독특한 윤리적 긴장을 유지한다. 명령과 복종이라는 형식은 분명 존재하지만, 그것이 일방적인 강제가 아니라 책임의 연쇄 속에서 정당화되기 때문이다. 지휘관은 명령할 권한을 가지는 동시에 가장 큰 책임을 떠안는 존재이며, 구성원들은 그 책임의 구조 속에서 자신의 역할을 수행한다. 이때 공동체는 위에서 아래로 작동하는 통제의 장이 아니라 서로가 서로의 책임을 지지하는 구조로 전환된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공동체가 개인을 소거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오히려 개인은 공동체 속에서 더욱 또렷해진다. 각자의 위치와 역할, 그리고 그에 따르는 책임이 분명해질 때, 개인은 단순한 구성원이 아니라 공동체를 지탱하는 주체로 자리 잡는다. 이는 개인이 공동체에 종속되는 방식이 아닌 공동체를 통해 자신의 행위에 의미를 부여받는 방식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본다면, 개별적 삶과 공동체적 삶은 서로를 제한하는 관계가 아니라 서로를 가능하게 하는 조건이다. 개인은 공동체를 통해 자신의 삶이 공공과 어떻게 연결되는지를 이해하고, 공동체는 개인들의 책임 있는 참여를 통해 지속된다. 문제는 이 관계가 끊어졌을 때 발생한다. 개인이 공동체로부터 완전히 분리될 때, 삶은 사적인 영역에 고립되고 사회는 파편화된다. 반대로 공동체가 개인을 압도할 때, 삶은 획일화되고 타자에 대한 배제가 강화된다.
오늘날 우리 사회가 겪고 있는 혼란은 바로 이 두 극단이 동시에 나타나고 있다는 데 있다. 개인은 점점 더 자유로워졌지만, 그 자유가 공동의 삶과 어떻게 연결되는지에 대한 감각은 희미해졌다. 반면 다양한 공동체들은 여전히 강력하게 작동하지만, 그 결속은 책임이 아니라 정체성과 적대에 기반하는 경우가 많다. 그 결과 공동체는 연대의 기반이 아니라 갈등의 장치로 기능하기도 한다.
따라서 지금 필요한 것은 공동체를 강화하는 일이 아니라 공동체를 구성하는 원리를 재정립하는 일이다. 그리고 그 핵심은 책임이다. 책임은 외부의 적을 상정하지 않아도 공동체를 유지할 수 있는 내적 원리이며, 개인의 자유를 억압하지 않으면서도 공공의 삶을 가능하게 하는 매개이다.
이순신이 보여준 ‘선공후사’는 바로 이러한 원리를 압축적으로 드러낸다. 그것은 개인을 희생하라는 도덕적 명령이 아니라 자신의 행위를 공동의 삶 속에서 다시 위치시키라는 요청이다. 자신이 맡은 바를 먼저 책임지는 태도, 그리고 그 책임을 타인에게 전가하지 않는 자세가 공동체의 신뢰를 형성한다.
결국 새로운 시대의 공동체는 동일한 사람들의 결합이 아니라 서로 다른 개인들이 책임을 통해 연결되는 구조여야 한다. 그것은 차이를 제거하지 않으면서, 아니 오히려 차이를 전제한 채 어떻게 함께 살아갈 것인가를 묻는다. 이때 공동체는 더 이상 개인 위에 존재하는 실체라기 보다 개인들의 실천 속에서 끊임없이 구성되는 과정이 된다.
개별적 삶과 공동체적 삶은 선택의 문제가 아니다. 우리는 이미 공동의 세계 속에서 살아가고 있으며, 문제는 그 관계를 어떤 방식으로 조직할 것인가에 있다. 이순신의 사례가 오늘 우리에게 남기는 질문은 분명하다. 우리는 무엇으로 연결될 것인가. 그리고 각자의 자리에서, 무엇을 함께 책임질 것인가.
[이진서]
고석규비평문학관 관장
제6회 코스미안상 수상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