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물가가 장기화되면서 소비자들의 장보기 풍경이 달라지고 있다. 예전에는 필요한 물건이 생기면 마트를 찾았다면 이제는 할인 시간이 언제인지 확인하고 장을 보는 소비자가 늘고 있다. 같은 상품이라도 몇 시간 차이로 가격이 크게 달라질 수 있기 때문이다. ‘무엇을 살 것인가’를 넘어 ‘언제 살 것인가’까지 따지는 이른바 ‘타임세일 소비’가 고물가 시대의 새로운 생존 전략으로 떠오르고 있다.
대형마트와 슈퍼마켓 식품 코너에서는 저녁 시간이 가까워질수록 할인 스티커가 붙은 상품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도시락과 초밥, 샐러드, 빵, 반찬 등 당일 판매 비중이 높은 상품부터 육류와 수산물, 일부 신선식품까지 할인 대상도 다양하다. 판매 시간을 놓치면 재고나 폐기 부담으로 이어질 수 있는 상품을 할인 판매하면서 소비자와 유통업체의 이해가 맞아떨어지고 있는 것이다.
서울에서 직장생활을 하는 40대 김모 씨는 최근 퇴근길 장보기 시간을 일부러 늦췄다. 김 씨는 “예전에는 퇴근하면서 바로 마트에 들렀지만 요즘에는 할인 상품이 나오는 시간에 맞춰 장을 보는 편”이라며 “샐러드나 반찬, 고기 등을 할인 가격으로 구입하면 한 번에 몇천 원씩 아낄 수 있어 한 달로 계산하면 생각보다 차이가 크다”고 말했다.
특히 김 씨는 할인 상품을 중심으로 다음 날 식단까지 결정한다. 그는 “무조건 싼 제품을 사는 것이 아니라 원래 살 예정이었던 품목 가운데 할인하는 상품을 고른다”며 “처음에는 조금 귀찮았지만 이제는 마트 앱에서 쿠폰을 확인하고 할인 시간에 맞춰 구매하는 것이 습관이 됐다”고 설명했다.
두 자녀를 키우는 50대 주부 이모 씨도 비슷하다. 장바구니 물가가 크게 부담되면서 육류와 과일, 반찬류를 정상가격보다 할인된 상품 위주로 구매하고 있다. 이 씨는 “예전에는 10만원이면 장바구니가 제법 채워졌다는 느낌이 있었는데 요즘에는 몇 가지 담지 않아도 금액이 금방 올라간다”며 “30%나 40% 할인 상품이 있으면 소비기한을 먼저 확인하고 바로 먹을 음식이나 냉동 보관할 수 있는 식품을 구매한다”고 말했다.
이처럼 소비자들은 단순히 가격이 싼 상품을 찾는 것에서 한발 더 나아가 할인 시간과 쿠폰, 적립금, 카드 할인 등을 함께 활용하는 방향으로 움직이고 있다. 온라인 커뮤니티와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서도 ‘마트 마감할인 시간’, ‘저녁 장보기’, ‘반값 장보기’ 등의 생활정보가 공유된다. 고물가가 소비자를 일종의 ‘생활비 전략가’로 만들고 있는 셈이다.

타임세일은 유통업체에도 중요한 판매 전략이다. 특히 신선식품과 즉석조리식품은 시간이 지나면 상품 가치가 빠르게 떨어지기 때문에 적절한 시점에 가격을 낮춰 판매하면 재고와 폐기 비용을 줄일 수 있다. 소비자는 정상가격보다 저렴하게 구매하고 판매자는 재고 손실을 줄이는 구조다. 판매되지 않은 음식물의 폐기를 줄인다는 점에서는 환경적 의미도 있다.
그러나 ‘반값’이라는 문구가 항상 절약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1만원짜리 상품을 50% 할인받아 5천원에 구매했더라도 필요하지 않은 상품이거나 먹지 못해 버린다면 5천원을 절약한 것이 아니라 5천원을 추가로 지출한 것이다.
실제로 30대 직장인 박모 씨는 할인 상품을 과도하게 구매했다가 소비습관을 바꾼 경우다. 박 씨는 “처음에는 50% 할인이라는 표시만 보면 일단 장바구니에 담았다”며 “냉장고에 넣어두고 먹지 못해 버리는 음식이 생기면서 할인율보다 내가 실제로 먹을 수 있는지를 먼저 생각하게 됐다”고 말했다. 그는 지금은 장보기 전에 필요한 품목을 휴대전화에 적어두고 목록에 있는 상품 가운데 할인 제품을 우선적으로 선택한다.
전문가들은 고물가 시대일수록 할인율 자체보다 ‘최종 지출액’을 관리해야 한다고 조언한다. 타임세일과 쿠폰, 1+1 행사 등은 계획적으로 활용하면 생활비를 줄이는 좋은 수단이지만 필요 이상의 소비를 유발한다면 오히려 가계지출을 늘릴 수 있기 때문이다. 소비기한과 보관 가능 여부, 가족의 실제 소비량, 단위가격까지 함께 비교하는 습관이 중요하다.
결국 고물가 시대의 장보기는 가격표만 비교하는 일이 아니다. 소비자는 할인 시간과 쿠폰, 적립금, 보관 가능성까지 계산하며 한정된 생활비 안에서 최대의 효용을 얻으려 하고 있다.
‘오늘만 반값’이라는 작은 할인 스티커 뒤에는 고물가 시대를 살아가는 소비자의 달라진 생활방식이 숨어 있다. 몇백 원과 몇천 원을 아끼기 위해 장보는 시간까지 바꾸는 모습은 단순한 ‘짠테크’를 넘어 생활비를 지키기 위한 현실적인 생존 전략이 되고 있다. 이제 고물가 시대의 현명한 소비자는 무조건 싸게 사는 사람이 아니라, 필요한 것을 가장 적절한 가격과 시간에 사는 사람인지도 모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