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70세 넘어서 인생을 편하게 사는 사람의 특징’이라는 글을 읽었다. 취미로 하루를 채우고, 남의 시선과 억지 인맥에서 벗어나고, 소박한 것에 감사하는 것. 이 세 가지가 젊을 때 고생한 사람들이 70대 이후에 편안해지는 이유라고 한다. 그중 ‘소박한 일상에 감사할 줄 아는 것’이라는 대목에 눈이 머문다.
거창한 여행이나 값비싼 음식이 아니어도 아침에 마시는 차 한 잔에서 기쁨을 찾는 사람이 있다. 행복을 자식의 효도나 남의 호의에서 구하지 않고 스스로 채우기 때문에 서운함이 끼어들 틈이 없다. 작은 것에 감사할 줄 아는 마음이 결국 외로움을 밀어낸다. 이런 사람들에게는 하루하루가 그 자체로 만족스러운 시간이 된다고 한다.
감사한 마음은 매일 먹는 밥과 숨 쉬는 공기가 ‘당연하다’고 생각하면 생기지 않는다. ‘만약 이게 없었다면 어땠을까?’ 하고 상상해 보면 갑자기 고마워진다. 친구나 가족이 나를 위해 시간과 노력을 써준 게 보일 때, “나를 생각해 줬구나” 하고 마음이 따뜻해지면서 감사함이 솟아나기도 한다. 좋은 일이 생겼을 때 뇌에서 기분 좋은 호르몬이 나오기 때문에, 몸과 마음이 저절로 “아 좋다, 감사하다”라고 느끼게 될 것이다.
나에게는 친목회 모임 일로 자주 만나는 오랜 지인이 있다. 그는 수십 년 목회를 했던 성직자이자, 지금은 전국에 천여 명의 회원이 있는 모임의 회장이다. 경남 창원 직장에서 만나 사십 년도 넘게 인연을 이어오고 있다.
지난해 뇌졸중으로 사십여 일 입원 후 끈질긴 재활 노력으로 칠팔십 퍼센트 회복된 단계에서, 병원 복도를 걷던 중이었다. 갑자기 뒤에서 택배기사가 끄는, 짐을 잔뜩 실은 손수레에 치어 앞으로 넘어져 심하게 다쳤다. 그 사고로 신체를 기동할 수 있는 비율이 삼십 퍼센트로 다시 떨어졌다고 한다. 하지만 그는 지난해 뇌졸중도 그만하기 다행이고, 이번 사고도 더 큰 일을 막은 액땜으로 여기며 감사해 하고 있다. 그가 회장으로 있는 모임의 10월 단합대회 슬로건을 ‘건강 그리고 감사’라 정해 놓았을 정도다. 성경의 ‘범사에 감사하라’는 구절을 철저히 실천하는 천상 성직자의 모습이다.
어제 그와 대화하다가 한참을 웃은 일이 있었다. 며칠간 심한 변비로 고생하다가 마침내 변을 본 네 살 손녀가 “똥아, 고마워”라고 하더란다. 그 할아버지의 그 손녀임이 틀림없다. 배설의 고통에서 벗어난 순간, 배출물마저 향해 고마움을 전할 줄 아는 아이의 순진무구함은 우리가 잊고 살았던 본래의 감사 감각을 빙긋 웃음 짓게 하며 일깨워 준다.
감사는 모든 것이 평안할 때만 가능한 것일까. 감사가 진정으로 빛을 발하는 순간은, 오히려 삶이 우리를 극한의 절망 속으로 밀어 넣을 때인지 모른다. 감히 상상조차 할 수 없는 극한의 조건 속에서도, 그 안에서 감사를 찾아내어 큰 울림을 준 대표적인 이들을 떠올려 본다.
한국 역사와 인물 중에서 억울하고 절망적인 상황 속에서 놀라운 감사를 고백한 이들이 있다. ‘사랑의 원자탄’으로 불리는 손양원 목사는 여순사건(1948년) 당시 공산 사상에 동조하던 청년들에 의해 사랑하는 두 아들을 총살로 잃는 비극을 겪었다. 부모로서 억장이 무너지는 고통 속에서 그는 장례식장 통곡 대신 하나님께 ‘10가지 감사’가 담긴 답사를 바쳤다.
“나 같은 죄인의 혈통에서 순교의 자식들이 나오게 하셨으니 감사합니다.”
“내 아들, 미국보다 더 좋은 천국에 갔으니 내 마음 안심되어 감사합니다.”
심지어 두 아들을 죽인 원수를 회개시켜 양자로 삼아 목사로 키워냈다.
2000년 불의의 사고로 전신 55%에 3도 중화상을 입었던 이화여대 이지선 교수 역시 수십 번의 고통스러운 이식 수술과 세상의 편견 속에서 감사를 찾아냈다. 숨을 쉴 수 있다는 것, 가족이 곁에 있다는 것, 손가락 마디가 움직여 책장을 넘길 수 있다는 것 등 아주 작은 조건에서 감사를 건져 올렸다. 그녀는 사고 이후의 삶을 ‘덤으로 받은 선물’이라 여기며 희망을 전하고 있다.
이들의 사례는 감사가 단순히 좋은 일이 생겼을 때의 기쁜 반응이 아니라, 가장 어두운 절망 속에서도 삶의 주도권을 놓지 않기 위한 위대한 정신적 승리임을 보여준다.
오늘 아침, 문득 거울을 보며 나 자신에게 물어본다. 네 살배기 손녀의 천진난만한 “똥아, 고마워!”라는 웃음처럼, 오늘 내 삶에 찾아온 당연한 하루와 작은 일에 나는 진심으로 고마움을 전하고 있는지 말이다.
[문용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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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집 ‘날개 작은 새도 높이 날 수 있다’, ‘영원을 향한 선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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