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물은 흐를 때 살아 있다. 고이면 썩는다. 이보다 더 단순하면서도 깊은 자연의 진리는 없다. 그런데 인간은 이상하게도 흐르는 것은 불안해하고, 고이는 것은 안정이라고 믿는다. 익숙한 자리, 익숙한 생각, 익숙한 관계 속에 오래 머물며 그것을 삶의 지혜라 착각한다. 그러나 자연은 멈춤을 죽음이라 말하고, 흐름을 생명이라 말한다.
요즘 '고인물'이라는 말은 어떤 분야에서 오랫동안 활동하며 뛰어난 실력을 갖춘 사람을 뜻한다. 하지만 그 말에는 묘한 역설이 숨어 있다. 경험은 많지만, 변화는 적고, 실력은 뛰어나지만, 새로운 것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사람, 처음에는 선배였지만 어느 순간 후배들의 발목을 잡는 사람을 조롱하는 말로 쓰인다. 실력은 자산이지만, 변화하지 않는 실력은 기득권이 된다.
인간은 나이가 들어 늙는 것이 아니다. 호기심을 잃을 때 늙는다. 질문을 멈출 때 늙고, 배우기를 거부할 때 늙는다. 몸은 쉰 살이어도 생각은 스무 살일 수 있고, 몸은 스무 살이어도 사고는 이미 늙어 있을 수 있다. 결국 인간의 나이는 주민등록증이 아니라 사고의 유연성이 결정한다. 사회 역시 마찬가지다. 조직이 무너지는 것은 경쟁자가 강해서가 아니라 내부의 고인물 때문이다. 새로운 아이디어는 “원래 안 그랬어”라는 말에 막히고, 젊은 감각은 “경험도 없으면서”라는 핀잔에 꺾인다.
혁신은 밖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안에서 막히는 경우가 더 많다. 흐르지 않는 조직은 결국 시대의 강물에서 밀려난다. 정치도 고인물이 되면 국민보다 권력을 지키려 하고, 기업도 고인물이 되면 고객보다 관행을 지키려 한다. 종교도 고인물이 되면 진리보다 교리를 앞세우고, 학문도 고인물이 되면 탐구보다 권위를 지키려 한다. 세상의 부패는 악한 사람에게서 시작되는 것이 아니라, 오래된 구조가 스스로를 바꾸지 못하는 데서 시작된다.
인공지능 시대는 고인물에게 가장 냉정한 시대다. 어제의 전문가가 오늘의 초보자가 되고, 십 년 동안 쌓은 지식이 몇 달 만에 낡은 정보가 된다. 이제는 많이 아는 사람이 살아남는 시대가 아니라, 가장 빨리 배우는 사람이 살아남는 시대다. 변화에 적응하지 못하는 경험은 자랑이 아니라 짐이 된다. 그러나 깊은 사람과 고인물은 다르다. 깊은 사람은 오래되었지만 흐른다. 자신의 철학은 지키되 새로운 생각을 기꺼이 받아들인다. 자신의 성공을 기준으로 세상을 재단하지 않고, 시대와 함께 배우며 성장한다. 깊이는 멈춤에서 생기는 것이 아니라, 오랜 흐름 속에서 만들어진다.
인생도 강물과 같다. 산에서 태어난 물은 수많은 돌을 만나고 절벽을 만나고 굽이굽이 돌아가면서 마침내 바다에 이른다. 한 번도 흐르지 않은 물은 바다를 만날 수 없다. 실패도 흐름이고, 좌절도 흐름이며, 도전도 흐름이다. 멈춘 사람은 안전할지 모르지만 성장하지 못한다. 살아 있다는 것은 숨 쉬는 것이 아니라 끊임없이 변하고 있다는 증거다. 흐르는 물은 늘 새로운 풍경을 만나지만, 고인물은 자기 얼굴만 비추며 살아가는 법이다.
“나이는 세월이 먹지만, 고인물은 습관을 먹는다”
[전명희]
서울대학교에서 철학을 가르치다 그만두고
‘밖철학연구소’를 설립해 연구에 몰두했지만
철학 없는 철학이 진정한 철학임을 깨달아
자유로운 떠돌이 여행자가 된 무소유이스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