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빛과 색깔에 매료되었었던 네덜란드의 후기 인상파 화가 빈센트 반 고흐의 편지 문구를 인용, 영국의 인기 여류작가 안토니아 수잔 바이어트는 1993년에 나온 ‘마음의 열정’이란 수상록에서 사색의 계절에 명상과 상념의 시간 속으로 아래와 같이 산책한다.
“나는 어리석고 바보 같은 짓 안 하려고 자연을 주시 관찰한다. 얼토당토아니하게 터무니없는 실수를 저지르지 않기 위해서다. 내가 칠하는 색깔이 자연의 빛깔에 일치 부합하는가 보다는 자연 그대로 아름다운 것처럼 내 화폭에 나타나는 그대로 아름다운가. 이것이 내 관심사다.”
언어나 다른 방식에 의한 우리의 표현력과 함께 우리가 색깔을 감지하고 분별할 수 있다는 것이 어쩌면 인간에게만 부여된 특전일지 모를 일이다. 다른 생물들은 다른 파장을 알아본다고 우리는 알고 있다. 우리가 공기와 소리의 흐름 속에 살고 있듯이 빛과 빛깔의 흐름 속에 살고 있으면서도 우리는 그 아주 적은 부분만을 감지하고 그 뜻을 이해하려고 애쓸 뿐이다.
반 고흐의 조색판 팔레트 위의 여러 색의 그림물감 색소 사이의 화학작용과 그 색조의 변조 또한 우리가 감지할 수 있는 흐름의 일부일 따름이다. 저 변화난측한 날씨에 따라 변화무상한 하늘과 나무들에서와 같이. 이 모든 것을 우리는 서로 또 우리 자신에게 연관 짓고 관련시킨다. 그것도 어디까지나 우리가 서있는 입장에서 우리가 바라볼 수 있는 시각으로 말이다. 내가 보기에는 그의 창작력의 열정이 절정에 달했을 때 반 고흐는 이 모든 것들을 일종의 창조적이고 시적인 조화 속에 수용시킬 수 없었던 것 같다. 그도 그럴 수밖에 없었던 것이 모든 것이 균형 잡힌 조화란 언제나 항상 안팎으로 위협받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이것이 어디 빛의 흐름 속에서 뿐이랴. 시간의 흐름 속에서도 우리가 겪는 일이기도 하다.
미국의 소설 평론가 조세핀 헙스트(1892-1969)는 1991년 출간된 ‘활기 띤 스페인의 푸른 창공’에서 어린 시절 한여름 바닷가에서 지낸 일을 아래와 같이 묘사하면서 어른들이 한 어린아이에게 어떻게 세월의 흐름을 통해 이어지는 한 가족의 부단한 지속성과 일체감을 전해주는지, 그 은밀 미묘하고도 신비스러운 방법들을 상기시킨다.
“밤이었다. 유목, 부목을 걷어 모아 지핀 커다란 야영의 모닥불 캠프파이어 불똥이 산지사방으로 튀면서 무지갯빛으로 혹은 유황빛 황녹색의 빛줄기 분수로 뿜어 오르다가 녹청색 웅덩이 속으로 침몰하듯 가라앉는 불빛 속으로 요술쟁이들과 견습하는 그들의 제자들이 마술을 부리고 있었다. 깊은 수면 같은 하늘에 떠서 반짝이는 수많은 별빛과 끊임없이 들려오는 파도 소리로 나는 물속에 잠긴 채 밤이라는 광대한 침상용의 그물해먹, 흔들리는 요람에 누워있는 것 같았다. 없어진 것들과 지나가 버린 일들에 관해 이야기를 나누는 어른들의 말소리가 때로는 웃음소리로 변하면서 시간과 공간의 아득한 수평선 저 너머로 넘나들고 있었다. 그 순간 ‘저기’가 ‘여기’가 되었고 ‘그때’가 ‘지금’이었다. 마술사들이 그들의 요술그물을 바다 위로, 사람들이 농사짓고 살던 시골 동네 마을들을 뒤덮어버린 대양에 던지고 있었나 보다. 그렇기에 그들이 되살려내는 세계는 그토록 꿈같았고, 그 환상들은 유령 같았으며, 그 밤은 온통 물속에 잠겼으리라. 그들의 소유인 역사의 산호섬들을 나뭇가지처럼 내게로 뻗어 나눠주면서”
깨닫게 되는 순간
현재 있는 것 전부,
과거에 있었던 것 전부,
미래에 있을 것 전부인
대우주(大宇宙)를 반영하는
소우주(小宇宙)가 인간이라면
이런 코스모스가 바로 나 자신임을
깨닫게 되는 순간이
그 어느 누구에게나
다 있을 것이다.
이러한 순간을 위해
너도나도 우리 모두
하나같이 인생순례자
세계인 아니 우주인
‘코스미안’이 되었어라.
하늘하늘 하늘에 피는
코스모스바다가 되기 위해
바다
영원과 무한과 절대를 상징하는
신(神)의 자비로운 품에
뛰어든 인생이련만
어이 이다지도 고달플까.
애수에 찬 갈매기의 고향은
정녕 출렁이는 파도 속에 있으리라.
인간의 마음아
바다가 되어라.
내 마음 바다가 되어라.
태양의 정열과
창공의 희망을 지닌
바다의 마음이 무척 부럽다.
순진무구한 동심과
진정한 모성에 간직한
바다의 품이 마냥 그립다.
비록 한 방울의 물이로되
흘러흘러 바다로 간다.
사상이 아니고 사랑이다
사상이 아픔이라면
사랑도 아픔이다.
머리가 아픈 게 사상이라면
가슴이 아픈 게 사랑이다.
사상은 착취와 살생의
괴로움을 주는 아픔이지만
사랑은 양육과 양생과 희생의
기쁨을 주는 아픔이다.
세상의 모든 싸움과 다툼이
서로 다른 사상 때문이라면
사랑은 모든 슬픔과 아픔을
치유하고 평화를 가져온다.
사상은 우리를 갈라놓지만
사랑은 우리를 하나로 만든다.
사상은 우리에게 서로의 다른 면만 보여주지만
사랑은 우리에게 서로의 같은 면을 보여준다.
사상은 네가 죽어야 내가 산다고
우리를 세뇌시키지만
사랑은 네가 살아야 나도 산다고
우리를 깨우쳐 준다.
사상은 카오스를 불러오지만
사랑은 코스모스를 피우리라.
천국과 지옥
천당과 지옥이 따로 있나.
누구를 미워할 때 지옥이고
누군가를 사랑할 때 천당이지.
천당과 지옥이 어디 있나
호의와 선의 베푸는 마음이 천당이고
악독하고 고약한 몹쓸 마음이 지옥이지.
천당과 지옥이 언제인가
잘 사는 오늘이 천당이고
잘못 사는 이 순간이 지옥이지.
오늘 잘 사는 사람 내일도 잘 살 수 있듯이
이 세상 삶을 잘 사는 사람 내세에도 잘 살리라.
오늘 뿌리는 대도 내일 거두게 될 테니까.
제 마음속에 아름다움 있는 자만이
바깥세상 아름다움 볼 수 있듯이
진주 같은 마음 가진 자만이 진주를 알아보리라.
이 세상에서 천국을 맛보는 낙천주의자만이
내세의 천국도 누리게 되리라.
오늘 이 순간을 즐겁게 사는 것이 천당이고
마지못해 사는 것이 지옥임이 틀림없어라.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알 수도 알 필요도 없으리.
우주 순례자
생명의 시작은 어머니의 자궁
어머니의 자궁은 우주의 고향
우주의 고향은 영혼의 거처
우리는 영혼의 거처로 돌아온
영원한 우주의 순례자
[이태상]
서울대학교 졸업
코리아타임즈 기자
합동통신사 해외부 기자
미국출판사 Prentice-Hall 한국/영국 대표
오랫동안 철학에 몰두하면서
신인류 ‘코스미안’사상 창시
이메일 :1230ts@gmail.com
